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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과 미래] 톨레랑스 한마디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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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의 사상가' 홍세화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77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중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 파리에서 20년 가까이 망명 생활을 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등 베스트셀러를 낸 산문 작가로서 한국에 돌아온 후, 오랫동안 풀뿌리 사회 운동에 몸 바쳐온 한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다.

선생의 큰 업적은 좌우로 나뉘고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에 톨레랑스(tolerance)란 개념을 처음 알린 데 있다. 프랑스어로 '허용 오차'를 뜻하는 이 말은 이념, 사상, 종교, 신분, 출신 등에 따른 차별과 억압, 비방과 배제를 금지한다는 의미로 우리말로 흔히 '관용'으로 번역된다.

톨레랑스의 원리는 "네가 타인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너 역시 타인에게 하지 마라"라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사회 전체에 퍼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볼테르의 '관용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볼테르는 종교 전쟁 시기 군중의 광기 어린 맹신 탓에 재판 절차도 없이 억울하게 살해된 칼라스라는 시민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말 몇 마디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프랑스 사회의 불관용을 규탄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불관용은 야만의 증명으로, 결국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을 일으킨다. 프랑스인들은 이 끔찍한 사실을 구교와 신교로 나뉘어 수십 년 동안 분열과 박해, 전쟁과 학살을 거듭했던 어두운 역사를 겪으면서 깨달았다. 어떤 개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인식된다. 눈이 바뀌지 않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고, 생각이 변화하지 않으면 행동이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홍세화 선생은 말했다. "톨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그가 톨레랑스를 강조한 것은 사상 탓에 긴 세월 동안 파리에서 힘겹게 망명 생활을 했던 개인사 때문일 테다. 그러나 이 말이 한국 사회에서 커다란 공감과 함께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 된 것은 극한의 이념 대립 속에서 자유를 억눌려온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민들의 강렬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타협 없는 극단의 정치, 화해 없는 분열의 정치, 남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쇠귀의 정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관용을 충분히 익히지 못한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선생이 남긴 톨레랑스 한마디는 더욱더 빛이 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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